전체 글(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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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2001)
아주 어렸을 때 주말 아침마다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 영화를 틀어줬던 텔레비전 채널이 기억이 난다. 나는 그 채널의 부지런한 관객이었다. 매 주말 아침마다 아직 잠이 덜 깼을지라도 잠옷을 입은 채 꾸역꾸역 티비 앞에 앉았어야만 했다. 과 나의 만남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때 이 영화는 나에게 아주, 엄청 무서운 영화로 기억되었다. 그도 그럴게, 음식을 먹고 돼지로 변한 부모님이라니! 십년 동안 나에게 하면 떠오르는 장면은 그 장면 밖에 없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기억된 영화와 다시 만난지 무려 십여 년만이다. 어렸을 때 아무 생각 없이 봤던 이 영화가 뜯어보면 얼마나 세세하고 아름다운 디테일을 가지고 있는지, 얼마나 좋은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는지 늦게나마 깨달아서 기쁘고 특별한 시간이었다. 공간적..
2023.03.19 -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2008)
는 무엇보다 이야기가 중요한 영화이다. 나이차를 고사하더라도 한나와 마이클의 짧고 낯선 사랑을 관객에게 납득시켜야 하며, 30년이 남짓한 시간을 2시간으로 담은 영화이기에 사건의 순서와 전후관계가 촘촘하고 일리있게 배열되어야 한다. 이런 이야기이기에 그만큼 중요하게 느껴지는 게 바로 영화의 모든 사건의 발단이 담긴 영화의 초반부라고 생각한다. 초반부는 영화 전체적인 흐름을 넘어서 결말까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견고하고 튼튼한 기반이 흐름을 잡는다. 그래서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씬을 선택하게 되었다. 00:02:13 ~ 00:05:25 홀로 남은 마이클이 창 밖을 바라보자 노란 전철이 한 대 지나간다. 양쪽 창틀을 활용하여 프레임 내에 프레임을 만들었다.전체적으로 실내 및 다른 요소는 블루/그린 ..
2023.03.15 -
콜드 워 (2018)
제목처럼 냉전시기라는 사회적 배경 속에서 피어난 사랑 이야기 줄라와 빅토르는 비슷한 인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다른 유형의 사람이다. 공산체제에서 빠져나가 자유로운 음악을 하고 싶은 예술가 빅토르, 자신의 삶의 안정을 위해서라면 공산체제에도 순응할 수 있는 줄라. 두 사람은 이런 세계에서 만나 애틋해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또 이런 세계 때문에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한다. 이런 둘을 담은 카메라는 1:37 이라는 좁은 화면비 속,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에 따라 서늘할 정도로 차갑고 정적이게 또는 불안할 정도로 자유로운 움직임을 반복한다. '사랑은 외부의 충격이 가해질수록 단단해지고, 유달리 내부의 균열엔 취약하다.' 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00:25:08 ~ 00:27:30 약 1분..
2023.03.08 -
8월의 크리스마스 (1998)
00:36:51~00:40:03 외부에서 작업하는 정원의 뒷모습이 보이는 샷, 다림의 손이 먼저 프레임인 한다. 장난끼 넘치는 다림의 표정이 살짝 보이고, 그 뒤로 정원이 뒤를 돌아보기 전까지는 인물들의 뒷모습만 보인다. 이런 샷이 무언가를 기대하게 만드는 것 같다. 두근두근 간질간질한 순간. 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 씬의 첫 컷은 비교적 좁은 샷에서 시작한다. 화면밖에 무엇인가를 보고 웃는 정원(병원씬), 사진을 보는 아이들의 뒷통수와 작은 손들(남자아이들씬), 문 사이로 누군가를 발견한 정원의 친구(태권도 도장 씬) 이런 첫컷들은 대부분 길이가 긴 편이다. 그리고 다음 컷, 혹은 프레임 인으로 정보값을 아주 천천히 더하는데, 보는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 같다. 유리창을 사이로 대화를 하는 두..
2023.03.01 -
이제 그만 끝낼까 해 (2020)
1:26:00~1:30:36 멈춰서는 차 레터박스와 구분이 어려울 정도의 칠흑 속에 차 불빛과 가게 불빛만을 중앙에 위치시켜 통해 독립적이고 이질적인 공간을 구성하였다. 차 뒷자석에서 잡은 앵글을 통해 도착한 환경을 비추는데, 제한적인 시야는 불안한 감정을 자아낸다. 차에서 내리는 두 사람, 역시 뒷 배경은 암흑. 가게에서 새어나오는 녹색 형광등 빛만이 그들을 조금 비춘다. 두 사람이 대화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화의 내용과 전혀 관계 없는 가게의 모습을 부분적으로 보여준다. 낯선 공간은 풀샷으로 먼저 비춰주는 것보다 이렇게 누군가의 시점을 통해 부분적으로 비춰주는 것이 공포, 스릴러 영화에서 더 효과적인 씬의 시작이 아닐까 싶다. 암흑 속에서 형광등 빛을 받아 은은하게 녹색 빛이 묻은 피에로 캐릭..
2023.02.21 -
맹크 (2020)
0:20:37 1930년, 시대의 낭만을 재현하기 위해 연출/촬영적으로 고전영화를 흉내낸 부분이 많다. 특히 이 촬영장 씬에서 더욱 드러나는 편. 맹크가 천막 뒤에서 프레임 인 한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 볕에 있는 까만 옷의 맹크와 응달에 있는 밝은 옷의 메이어&솔버그가 눈에 띄는 것은 시각적으로 탁월한 선택 같다. 흑백영화의 특성상 색이나 빛으로 인물과 배경을 구분 짓기 어렵기 때문에 사물과 인물이 더블되는 것은 거의 없는 모습. 뒷 배경의 소품들이 매번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다. 때문에 인물들의 배치, 거리가 참 적절하다. 어떤 상황에서 어디에 카메라를, 배우를 배치하면 눈에 잘 보일지 완벽하게 이해한 것 같은 샷들의 연속이다. 관찰자의 입장인 메이어&솔버그를 최대한 카메라 가까이 배치하고 멀..
2023.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