샷바이샷(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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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아 (2011)
지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우연히 본 영화의 관객과의 대화 자리에서 편집감독이 감독과 함께 자리한 경우가 있었다. 편집 감독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연출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일이 드문 만큼 감독과 편집자 사이에서 오고 간 이야기나 편집을 할 때 신경 쓴 점들을 자세히 들을 수 있어서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때 감독만큼이나 영화의 연출이나 의도 그리고 모든 프로덕션 단계를 꿰뚫듯이 말하는 편집감독을 보며 다시 한 번 느낀 것은, 편집자 역시 한 명의 연출자와 다름 없다는 점이었다. , 눈을 단번에 사로잡는 아름다운 미장센과 어지러운 상황에 더해 머리를 뒤흔드는 듯한 핸드헬드 촬영. 그러나 영화를 샷 단위로 나눠서 다시 보았을 때 느낀 것은 이 영화에 숨어있는 편집의 힘이다. 조각조각 난 샷들, 대부분 하나..
2023.05.09 -
경계선 (2018)
영화는 생소한 티나의 얼굴을 부각한 클로즈업 위주로 구성되었다. 영화 전체는 핸드헬드로 촬영됐으며 영화를 현실적으로 사실적으로 느끼게 하는 일명 숨쉬는 카메라의 효과보다 '스릴러'라는 장르적 특징을 살리기 위한 선택으로 보인다. 또한 2.39:1의 가로로 긴 시네마스코프 화면은 이 영화에서 인간으로서의 삶을 어떻게든 이어가려고 노력하는 티나의 상황을 오히려 더 답답하고 절망적이게 만들어버린다. 처음엔 시네마스코프인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화면은 좌우로 넓은 화면을 활용하지 않고 반대로 상하로 좁은 화면을 이용하는 방향을 선택한다. 마치 짐승 우리 안에 갇혀있는 것 같은 비좁은 화면 속 클로즈업으로 보이는 티나의 얼굴에선 수많은 회의와 갈등 등의 감정이 지속적으로 전해진다. 문을 따는 손에서 씬이 시작된..
2023.04.24 -
자전거 탄 소년 (2011)
예전부터 생각하길, 핸드헬드 카메라의 움직임은 인간이 숨을 쉬는 움직임과 많이 비슷하다. 프레임 양 끝을 자세히 보면 느껴지는 떨림은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이질적인 움직임이지만, 어느샌가 그런 떨림에 대한 의식은 그 떨리는 프레임 속 인물에게로 향하게 된다. 사건과 캐릭터들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보는 영화 속 제 3의 인물의 시선과 많이 닮아있는 그런 촬영법이다. 그만큼 어떠한 상황에서 인물의 감정을 꾸밈없이 느낄 수 있고 이는 보는 사람을 몰입하게 만드는 핸드헬드. 다르덴 형제는 이런 핸드헬드 연출의 대가라고도 불린다. 1999년 부터 시작해서 그들의 흔들리는 카메라는 늘 위태롭게 사회 속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낮은 곳에 위치한 인물들을 가장 가까이서 포착한다. 어딜 가나 눈에 띄는 붉은색..
2023.04.16 -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 (2007)
영화를 보기 전에는 이 제목이 엉뚱하게 받아들여지긴 했다. 그러나 결말까지 보고 나니 이보다 적절한 제목은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한 사건을 맞닥뜨린 각 인물들의 시간을 뒤죽박죽으로 얽혀 구성한 영화는 적절하게 배치된 순서와 샷의 구도를 통해 얼마나 치밀하고 적절하게 계획된 하나의 이야기인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영화 곳곳에 끊임없이 배치된 신파적인 음악은 오히려 낯선 느낌을 만든다. 영화 내내 이 형제의 선택에 납득하거나 공감한 관객은 없을 것이다. 인물에게 일말의 동정심도 주지 못하지만, 이기적이고 납득 불가능한 선택들의 순간 깔리는 서글픈 멜로디는 오히려 분노하게 만드는 촉진제 역할을 한다. 공간을 천천히 드러내는 긴 샷으로 주로 구성된 이 씬은 관객을 이끌어가는 속임수로 가득하다. 씬 전체..
2023.04.10 -
더 레슬러 (2008)
제목 그대로 프로레슬러의 인생을 담은 영화. 영화가 시작되고 약 2분가량 쏟아지듯 지나가는 수많은 기사들과 오프닝 시퀀스에선 1980년대 프로레슬러 '램'의 화려한 시절을 보여준다. 빠르고 강한 비트의 음악과 끝없이 이어지는 경기의 중계음은 움직임 없이 별도의 정지된 이미지와 텍스트만 지나가는데도 램의 위상을 강하게 느끼게 해준다. 마치 히어로 영화의 오프닝 같기도 하고, 만화 캐릭터 같기도 하고 비현실적일 정도로 느껴질 정도이다. 그러나 이 오프닝 시퀀스가 끝난 후 곧바로 등장하는 랜디의 모습에선 이런 전성기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고정되었지만 미묘하고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카메라는 늙고 불안정해진 그의 생계만을 드러낼 뿐. 휘황찬란한 시간을 보냈던 프로레슬러 '램'으로서 강하고 아름답던 시대는 이제..
2023.04.03 -
맨하탄 (1979)
마흔살이 훌쩍 넘은 나이, 예술을 하겠다고 일자리를 그만 둔 상황, 지금 만나는 사람은 자신의 딸뻘인 여자아이 그리고 절친의 내연녀. 아이작의 상황은 그야말로 천방지축이다. 자신이 이 낭만적인 도시에서 누구보다 지적이고 능력이 있다는 허황된 자신감에 빠져 있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자기모순에 빠진 비관주의자일 뿐이다. 애써 모른 척 하고 있지만, 자신의 처지를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기에 가장 조급한 것이며, 그런 본인의 모습을 인정하다가도 결국 과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카메라는 어디 보여주기 싫은 그의 인생을 지독할 정도로 쫓아다니지만 어느 순간에는 가차없이 두고 가거나 남기기를 반복하는데, 질이 쓴 책이 말대로 영화화가 된다면 그대로 이런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다. 과거의 이야기인줄만 알았던 이..
2023.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