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15. 01:07ㆍ샷바이샷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는 무엇보다 이야기가 중요한 영화이다. 나이차를 고사하더라도 한나와 마이클의 짧고 낯선 사랑을 관객에게 납득시켜야 하며, 30년이 남짓한 시간을 2시간으로 담은 영화이기에 사건의 순서와 전후관계가 촘촘하고 일리있게 배열되어야 한다.
이런 이야기이기에 그만큼 중요하게 느껴지는 게 바로 영화의 모든 사건의 발단이 담긴 영화의 초반부라고 생각한다. 초반부는 영화 전체적인 흐름을 넘어서 결말까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견고하고 튼튼한 기반이 흐름을 잡는다. 그래서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씬을 선택하게 되었다.
00:02:13 ~ 00:05:25
홀로 남은 마이클이 창 밖을 바라보자 노란 전철이 한 대 지나간다. 양쪽 창틀을 활용하여 프레임 내에 프레임을 만들었다.전체적으로 실내 및 다른 요소는 블루/그린 계열을 사용하여 대비되는 노란색이 더욱 눈에 띈다.
이전의 톤과 전혀 맞지 않는 세피아 톤에다, 미세하게 핸드헬드로 흔들리며 좌에서 우로 패닝되는 카메라, 갑작스레 비가 오는 날씨, 그리고 카메라를 직시하는 앳된 소년의 얼굴까지. 그야말로 갑작스럽고 이상한 컷이다.
따로 떼어 놓고 보면 모든게 정반대인 컷이 이어진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이전 컷에서의 배경으로 지나가는 전철의 이미지와 이어지는 전철 사운드 덕분이다. 이렇게 영화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자유자재로 넘기지만 동작과 사운드의 연속성을 이용하여 전체적으로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들어냈고, 그 효과가 정말 탁월했다고 생각한다.
마이클 뒷쪽 화면 정중앙에 위치한 흐릿한 마이클의 유리 잔상. 잠깐 지나간 컷이 마이클의 과거 모습이었던 것을 이해하면 의미 있는 부분이다. 흔히 쓰이는 거울과 비슷한 역할 같다. 혼란스러운 인물의 생각과 고민을 돋보이게 하는 이미지적인 역할도 한다.
열차 안으로 CUT TO. 검표원의 손에서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틸트 업 한다. 차체가 격하게 흔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검표원이 걸리는 마이클의 샷으로 이어진다. 뒷배경의 도로, 자동차의 지나가는 자동차의 지붕이 보일 정도로 살짝 부감으로 촬영되었는데 흔들리는 카메라 무빙과 더불어 이유모를 긴장감, 불안감을 극대화 한다.
검표원이 프레임 아웃 하자 높낮이가 아이레벨로 돌아온다. 그러나 마이클 좌우측에 사람들을 배치하여 마이클이 갇힌 듯한 답답한 느낌은 사라지지 않는다. 더불어 자신을 응시하는 아이의 샷이 리버스샷으로 연속 배치된다. 아무런 정보도 없지만 순식간에 낯설고 불쾌하게 느껴지게 되는 공간.
이에 반응하듯 마이클이 이 샷(공간)에서 탈출하는 움직임을 보인다. 아무것도 찍지 않던 프레임 속에서 빠르게 프레임 인하여 덜 답답한 공간으로 이동했다. 쫓아가는 움직임과 장소 특성을 생각하면 스테디캠으로 촬영되었음을 눈치챌 수 있다. 영상으로 확인해보면 인물을 정직하게 중앙에 맞추지 않는다. 우측 이미지처럼 무엇인가 잡아 중심을 잡기 전까지는 마이클의 상태를 반영하듯 비틀거리듯 느리게 움직이는데 흔들리는 차체와 합쳐져 어지러운 느낌이다.
과거의 마이클이 손을 올리자마자 현재의 마이클이 손을 들어 창문을 닫는 움직임으로 맞춰 전환. 유리에 비친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창문을 닫으면서 가리게 된다. 이후 완전히 회상으로 전환되는데, 세세한 디테일이 돋보이는 컷 전환이다.
화면 전체를 가렸던 전철이 빠르게 프레임 아웃하면서 회상씬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영화 전체적으로 밝고 따뜻한 세피아 옐로톤으로 구성되어 있는 반면, 두 사람의 과거 첫 만남은 로맨틱하게 느껴지는 톤앤매너와는 거리가 멀다. 비가 오는 흐린 날씨에 전체적으로 차가운 청록색 톤. 추후에 등장하는 '현실'에 가깝다.
이전 컷에서 자동차 하나가 마이클 앞을 지나간 순간, N.S에서 마이클 앞에 차량이 지나가는 순간에서 받는다. 방향은 다르지만 점프하는 시간 속에서도 철저하게 연속성을 지키려고 하는 디테일한 노력들이 보인다.
처음에는 N.S에서 시작했지만 스테디캠으로 인물보다 빠르게 쫓아가서 M.S로 마무리 한다. 이런 움직임들이 대사 없는 장면에서 인물을 주목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마찬가지로 우측에서 프레임 한 사람이 지나가자 B.S에서 지나가는 사람이 프레임 아웃하는 B.S에서 받는다. 이전의 감상한 영화들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가 시간과 연속성을 불문한 과감한 커팅이었다면, <더 리더>에서는 아주 작은 부분일지라도 기본적인 영화의 연속성을 철저하게 고수하려는 흔적이 보인다.
픽스로 보였던 화면은 마이클이 카메라 앞으로 다가올수록 미세한 흔들림과 함께 틸트 업 한다. 이후 움직임을 따라 천천히 팔로잉. 이 씬 전체적으로 스테디캠을 사용하는데 정지된 화면에서도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마이클의 불안정한 감정을, 움직임을 따라 느리고 비틀거리는 무빙은 좋지 않은 몸상태를 반영하는 듯 하다.
픽스 같아보이는 이 샷도 건물의 2층에 올라가 동일하게 카메라를 들고 촬영한 듯 보인다. 골목으로 들어선 순간 거리 노출의 극심한 차이로 완벽한 실루엣이 완성되는데, 동일한 실루엣이지만 벽에 붙어있는 마이클은 한나에 비해 많이 눈에 띄지 않는다. 철저하게 샷에서 숨어있는 듯한 느낌. 우산에 가려진 한나의 모습은 얼굴조차 보이지 않고 프레임 아웃 하여 그리 중요한 인물처럼 비춰지지 않는다.
타이트샷으로 들어가니 카메라의 움직임이 더 잘 보이기 시작한다. 타이트한 샷에서도 배경과의 큰 노출 차이를 활용해 인물을 완전히 노출적으로 죽여버리는 방향을 선택했다. 그래서 떨어지는 구토나 작은 빗방울이 눈에 띈다.
마이클 앞을 한나가 완전히 가리면서 지나가며 컷을 받았다. 철저히 분리되고 싶었던 마이클에게는 당황스러운 난입이다. 그것이 좌측에 살짝 빛을 받아 보이는 표정에서 드러난다.
혼란스러운 상황처럼 카메라도 수평이 맞지 않아 살짝 기울어진 상태를 유지한다. 그리고 이전보다 비교적으로 격하게 움직인다. 스테디캠을 의도적으로 흔들어 더 움직임을 준 것 같다.
실루엣샷에서 백라이트나 측면 라이팅을 통해 인물의 외곽선을 살리는 동시에 조금이라도 디테일을 살리는 방향도 있었을텐데 이 장면의 측면샷은 인물을 완전히 암부로 만들어 죽여버린다. 대사와 표정을 드러내지 않고 인물의 상황을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이후 영화의 전체적인 톤과 가장 반대되는 거의 유일한 시퀀스이기도 하니.
여전히 마이클의 샷은 강한 대비와 실루엣이 유지되고, 한나는 비교적 밝은 부분에 가서 일부가 드러난다. F.S은 나의 P.O.V에 가까워 보이기도 하는데, 분명 넓고 탁 트인 샷임에도 답답하고 우울한 기운이 느껴진다. 프레임 속에 프레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프레임 안이 아닌 외부에 보일 듯 말 듯 위치되어 있는 마이클의 모습에서 복잡한 감정이 전달된다. 특히 계속해서 프레임 속은 사람이나 자동차, 빗줄기 등으로 움직임을 주고 있으니 전혀 다른 분리된 공간처럼 비춰지게 된다.
가장 상단의 첫컷이 약부감으로 촬영되었지만, 일어서서 한나가 마주본 순간부터 아이레벨로 안정적인 구도가 완성된다. 여전히 로우 톤은 유지되지만 카메라 구도로 인해 인물 뒤쪽에서 들어오는 빛이 얼굴 한편에 묻어나는데, 이에 더해 클로즈업으로 가까워진 샷사이즈를 통해 강조되는 것이 두 인물의 눈이다. 비록 처음엔 사랑이 아니었을지라도 그만큼 진정성이 느껴지는 강렬한 첫만남이다. 처음 보는 사람의 눈을 이렇게까지 가까이서 들여다 볼 일이 살면서 있을까.
이 씬 전환에서도, 앞에 블로킹되었던 자동차가 지나가면서 두 인물이 프레임하는 움직임처럼 보이게 했다. 감정이 진정되었기에 이곳에서는 카메라는 고정된 상태에서 부드러운 좌패닝으로 이루어진 움직임이다. 날씨도 굳은 빗줄기에서 눈으로 바뀌어서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
동일한 스테디캠이지만, 확실히 이전 컷들과 비교하여 움직임이 적어지고 부드러워졌다. 톤 역시 블루빛으로 유지되지만, 명도가 진하지 않아 부드러운 느낌까지 든다. 너무 아쉬워질 정도로 평범해진 샷들의 배치와 구도.
두 사람의 가는 길은 정반대이다. 마이클은 부유한 집안 환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향하는 곳이 오르막으로 설정된 듯 하다. 또한 아직 젊은 나이이기에 향하는 곳에 해가 들고 있는 것도 발견할 수 있다.
쉽사리 떼지 못하는 마이클의 시선처럼, 강렬했지만 짧은 만남의 마무리가 아쉽다는 느낌이 든다. 평탄한 카메라 움직임이나 샷의 구도, 이 장소조차도 너무나 평범한 느낌이다. 어쩌면 우리가 느끼는 이런 묘한 아쉬운 마음 또한 의도한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00:32:48~00:34:50
우측 프레임 인에서 시작하여 좌패닝으로 두 사람을 쭉 따라가는 넓고 긴 첫 샷. 길진 않지만 넓고 탁 트인 샷 속에서 빠른 움직임까지 담은 씬의 시작이다.
마찬가지로 빠르게 프레임 인 하는 마이클을 따라가며 상당히 역동적인 느낌으로 시작된다. 멈춰 마이클이 프레임 우측 끝에 위치하자 한나가 화면 중앙 쯤에 위치하여 O.S샷이 완성된다.
한나의 움직임을 따라서 좌패닝. 그러나 중심이 되는 것은 인물보단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랫소리와 성당건물. 때문에 샷 탑 지점과 엔드 지점에서 한나의 위치를 프레임 좌측 끝으로 고정시키고 기뵤적 배경을 더 크게 잡았다. 마지막 엔드에서는 기다란 자전거 줄이 자칫 비어보일 수 있는 공간을 채웠다.
한나의 움직임이 멈추려는 순간 바로 움직이는 마이클의 샷으로 전환한다. 동일하게 인물을 프레임 좌측에 위치시키고 우측 여백을 두어 이 공간에 대한 궁금증을 만든다.
프레임 아웃한 마이클에서 성당 안으로 들어서는 마이클으로 받는다. 카메라의 움직임이 정체될지언정 인물의 움직임이 멈추는 순간은 거의 없다. 둘 중 하나는 끊임 없이 움직여서 연속성을 만들어낸다.
샷 좌우에 벽을 걸어 프레임 속 프레임을 통해 관찰자의 시선으로 보여주는 시점샷. 같은 공간이지만 마치 분리된 또다른 공간처럼 느껴지게 한다.
시점샷의 주인이던 마이클이 시선을 좌측에서 우측으로 옮기자 또다른 시점샷이 이어진다.
전혀 다른 느낌의 시점샷, 달리를 사용해 아주 느리고 천천히 한나를 보이게 만드는데, 이전 시점샷과 비교해서 인물이 프레임 끝 언저리에 거의 걸쳐있는데다 과할 정도로 넓은 여백이 특징이다. 그리고 한나의 좌측에서 아주 강한 데이라이트를 쐈는데, 오히려 인물을 돋보이게 만든다.
분명 서로를 향해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묘하게 이어지지 않는 듯한 단독 샷이다. 샷사이즈도, 시점도 맞지 않는 것 같다. 게다가 두 사람 다 향해있는 방향이 우측이다.
한나와 마이클이 보고 있는 성당 내부를 천천히 트랙인 하며 보여준다. 이곳에 있는 아이들이 특히 어린아이들인 점이 중요하게 느껴진다.
이후 트랙샷에서 이어지듯 단독샷에서 움직임이 더해진다. 한나는 곡선 달리를 이용해 천천히 배회하듯 그를 훑고 있으며, 마이클은 디지털 줌 인을 사용했다. 인물이 가만히 있는데 카메라가 움직이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 인물의 감정이 움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전반적인 밝은 톤을 유지하고 있다. 오히려 이전 씬들에 비해 훨씬 따뜻하고 밝은 느낌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표정과 더불어 이상하게 서글픈 느낌이 전해진다.
별 거 아닌 것 같은 이 씬이 가장 특별하게 느껴진다. 이 영화의 주요한 논쟁거리 중 하나인 소년애. 이 논쟁을 상쇄시키는 것이 이 씬이라고 생각한다. 성당이라는 장소의 특징, 주위의 아이들, 이곳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두 사람. 이 씬은 이 이야기를 연출한 사람이 이 두 사람의 사랑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아야지만 넣을 수 있었던 장면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한나와 마이클 역시 이것이 정상적이고 용서될 수 있는 사랑이 아니라는 것은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다고 그들의 표정이 말해주고 있다. 두 사람의 은밀한 죄책감이나 불안한 정서를 드러내는, 아주 잠깐이나마 속죄하는 무엇보다 깊이 있는 장면이 아닐까, 하고 개인적인 추측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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