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크리스마스 (1998)

2023. 3. 1. 23:16샷바이샷

 


00:36:51~00:40:03

 

다림 O.S 정원

 외부에서 작업하는 정원의 뒷모습이 보이는 샷, 다림의 손이 먼저 프레임인 한다. 장난끼 넘치는 다림의 표정이 살짝 보이고, 그 뒤로 정원이 뒤를 돌아보기 전까지는 인물들의 뒷모습만 보인다. 이런 샷이 무언가를 기대하게 만드는 것 같다. 두근두근 간질간질한 순간.

 

씬의 첫 컷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

 

 씬의 첫 컷은 비교적 좁은 샷에서 시작한다. 화면밖에 무엇인가를 보고 웃는 정원(병원씬), 사진을 보는 아이들의 뒷통수와 작은 손들(남자아이들씬), 문 사이로 누군가를 발견한 정원의 친구(태권도 도장 씬) 이런 첫컷들은 대부분 길이가 긴 편이다. 그리고 다음 컷, 혹은 프레임 인으로 정보값을 아주 천천히 더하는데, 보는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 같다.

 

정원 O.S 다림 / 다림 O.S 정원

 유리창을 사이로 대화를 하는 두 사람. 이 씬의 중심은 다림으로 설정했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의 목소리만을 들리게 하는데, 정원의 말은 들리지 않아 여러 추측을 하게 된다. 아마도, 순서대로 '나는 일하고 있었지' '뭐라고?' '너랑, 나랑, 커피 한 잔, 오케이?' 

 

 촬영감독의 신념에 따르면... 뒤로 보이는 걸어가는 사람들, 지나가는 차들은 통제하지 않았을 것. 차량의 소리나 행인들의 소리도 그대로 담긴다. 이런 작은 요소들이 그 시절의 자연스러운 감성을 더한다.

 

다림 단독 B.S / 다림 O.S 정원

 정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기에 다림의 씬은 O.S가 아닌 단독샷으로 전환된다. 정원의 샷은 다림의 O.S를 유지한다.

 

다림 단독 B.S

다시 다림의 단독샷, 다림이 프레임 아웃 한다. 그리고 CUT TO해서 사진기가 찰칵 열리는 소리로 받는다.

 

롱테이크, 트래킹

 다림의 클로즈업에서 시작하고 두 사람의 투샷 N.S로 끝나는 롱테이크

 

 영화를 보고 가장 좋았던 점 중 하나는, 롱테이크의 구성이 끝내주게 아름답다는 것이다. 공간과 소품을 정말 잘 활용했다. 이 샷도 천천히 분석하자면, 처음에 다림의 클로즈업샷에서 시작한다. 렌즈는 상당히 망원렌즈를 사용한 듯 다림 외에 다른 배경이나 환경은 포커스가 아웃된 모습이고 화각이 좁다. 화면 밖에서 정원의 대답이 들려오지만 아직까지 보여주지 않는다. 다림이 사진기와 카메라 사이를 걸어나와서 거울 앞에 서자 커피를 타는 정원의 모습이 등장한다.(그러나 여전히 포커스는 다림에게만 향했다) '근데 아저씨는 왜 결혼 안 하셨어요?' 다림의 질문이 정원에게로 향하며 이동하자 카메라도 트랙이 뒤쪽으로 빠짐과 동시에 180도 회전하여 두 사람을 비춘다. 그리고 고정된 샷에서 인물들이 각자 위치에 자리 잡는다.

 

다림 B.S 
정원 B.S / 다림 B.S
정원 B.S / 다림 B.S

 다시 CUT TO, 다림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그 시절의 향수가 느껴지는 거꾸로 맺힌 상에 천천히 초점이 잡힌다. 단독샷이라기보다는 뷰파인더로 본 정원의 P.O.V에 가까운 샷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쩐지 긴장을 한 어색한 다림의 모습,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을 빠안히 보고 있으면 신경쓰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다음 컷에서 정원 역시 흔치 않은 실수를 하고 굳자 다림이 웃는다. 쌍방으로 호감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풋풋한 씬.

 

 

 


00:44:16~ 00:47:26

 

P.O.V

 여전히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밤. 화면 밖에서 노랫소리가 들린다. 유리창 밖으로 지나가는 행인도 보이고, 간판의 녹색 빛까지 합쳐지니 어째서인지 우울하고 서글픈 느낌이다.

 

실외에서 사진관 내부의 정원 N.S

비를 구경하며 흥얼거리는 정원. 사진관 밖에서 정원의 모습을 담는다. 창에 맺힌 빗줄기가 어딘가 우울한 그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듯하다. 한참을 서있다가 왼쪽으로 프레임 아웃 한다.

 


ex) 사진관의 공간을 살린 샷들

 이 영화에서 가장 주요한 장소인 사진관, 공간의 이점을 잘 살린다. 창 밖에서 내부를 담거나, 내부에서 창 밖의 인물을 담거나... 영화가 끝날 즈음에는 관객마저도 이 공간을 소중하고 익숙한 공간처럼 느끼게 되는 것 같다.

 

ex) 유리창을 활용한 샷들

 혹은 유리창이라는 것 자체가 죽음을 앞두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가갈 수 없는 정원의 마음을 나타내는 것은 아닐까. 사진관이라는 정원의 가장 특별한 공간. 그리고 자꾸만 그 유리창을 열고, 부수기까지 해서 다가오려는 다림. 생각해보니 항상 먼저 찾아오는 것은 다림이었기도 하다. 그러나 정원은 다림을 받아줄 수는 있지만 먼저 유리창을 넘어서 잡거나 다가갈 수 없다.

 

정원 B.S

 다시 돌아와서 정원의 단돋샷. 벽에 막힌 노즈룸은 답답한 느낌을 준다. 어딘가 울적해보이는 것은 기분탓이 아니었나 보다. 이 영화에선 죽음, 정원의 우울함을 크게 드러내진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중간중간 초연하고 담백하게 혼자 있는 정원을 보여준다. 그게 더 서글픈 느낌이 있는 것 같다.

 

할머니 W.S / 투샷 W.S

 사진관으로 들어서는 할머니, 좌측에서 정원이 프레임 인 한다. 할머니가 우측으로 프레임 아웃. 그리고 CUT TO.

 

할머니 O.S 거울샷 / 투샷 / 단독샷 (롱테이크)

 CUT TO 거울에 비친 할머니, 그 뒤로 세팅하는 정원의 모습이 보인다. 준비가 되어 할머니가 돌아서는 동시에 거울이 아닌 할머니에게로 포커스 인 하고 전 씬과 마찬가지로 카메라가 180도 회전하여 투샷으로 전환한다. (여기서도 우측, 혹은 뒤쪽으로 짧게 트래킹한 것 같다.) 죽음을 앞두고 영정사진을 준비하는 사람의 마음.

 

 

정원 B.S

"정말 고우셨겠어요." 라고 말하는 정원이 사진기를 앞을 향해 밀자

 

할머니 B.S (트랙 인) 

 그대로 할머니를 향해 다가가는 트랙샷에서 받는다. 고개를 살짝 왼쪽으로, 안경은 벗고, 활짝 웃는 모습이 긴 롱테이크로 이어진다. 

 

할머니 B.S

 이전에는 가족의 권유로 답답하고 슬픈 얼굴이었다면, 직접 찾아온 지금은 훨씬 더 자연스럽고 고운 미소가 담긴다.

 

 나는 아직도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깨달은 후 죽음에 의연한 심정을 공감하기가 어렵다. 내가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슬프고 두렵다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보다 훨씬 더 기나긴 삶을 살아오고, 수많은 이별을 겪어보았다면 언젠가 삶의 끝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테다.

 

정원 B.S

 이전의 긴 샷에서 드디어 정원의 표정이 보인다. 복잡한 마음이 담긴 깊은 연기다. 마지막엔 먹먹한 마음을 애써 참는 표정에서 씬이 전환된다. 아마도 정원이 마지막에 직접 영정사진을 찍은 것은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순간의 영향이 크지 않았을까. 다음 씬은 또 그날 밤 자리를 옮겨 아버지 옆에서 잠을 청하는 정원의 모습으로 이어져 더 여운이 남는 시퀀스다.

 

 


내 기억속에 무수한 사진들처럼 사랑도 언젠가는 추억으로 그친다는 걸 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준 당신께 고맙단 말을 남깁니다.

 

 영화의 마지막 독백을 듣고, 정원이 찍은 사진들을 모아보았다.

 

여자 손님, 정원의 가족, 다림, 할머니, 친구들, 복싱선수
그리고 정원 자신

 그가 찍은 사람들은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 혹은 처음 만난 손님들도 있다. 그리고 아마 영화에 담기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을 정원은 찍어왔을 것이다. 무엇보다 익숙한 일이겠지만, 그럼에도 본인의 영정사진은 한참을 또 한참을 고민하다가 찍었다.

 

 술에 취하고 친구랑 부둥켜 안고 울고, 밤에 베개에 얼굴을 묻고 울고, 그럼에도 살려고 병원 밥을 먹어치우던 정원. 주변 사람들 앞에서 차분할 정도로 의연한 모습은 사실 두려움으로 인한 부정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러나 그 끝에 사진첩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아름다운 사랑을 그대로 간직하기로 결정하며 그는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직접 사진기 앞에 서고, 웃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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