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1. 01:37ㆍ샷바이샷
레퀴엠 ; 죽은 자들을 위한 위령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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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오프닝 시퀀스. 많은 설명 없이 분할화면만으로도 해리와 사라, 모자 간의 관계설정을 함축해 빠르게 보여주는 효과적인 연출이다.
두 사람의 단독샷, 시점샷이 쉴 세 없이 번갈아가며 배치되며 긴박한 상황을 보여준다. 사라를 팔로잉 하던 카메라가 그가 창고 안으로 들어간 순간 움직임을 멈추고, 우측에서 슬라이드로 쫓아간 해리의 샷이 등장하며 분할 화면이 시작된다.
열쇠 구멍 사이로 보이는 해리, 사라의 시점샷이 교차로 보여진다.
좁고 어두운 창고에 있는 사라의 샷은 얼굴 클로즈업/열쇠구멍 P.O.V 단 두가지 샷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반명 거실에 있는 해리의 샷은 비교적 다양하고, 샷 사이즈도 넓은 편이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기에 카메라도 인물을 따라서 팔로잉 하고 있다.
한정적인 시야와 구도는 불안감을 자아낸다. 이런 제한적인 샷들을 통해 사라가 해리보다 심리적으로 을의 위치에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하나의 시퀀스만으로 우리는 그들이 일반적인 모자 관계와 다른 어떤 문제가 있는 관계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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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컷(해리와 마리온)에서의 전환, 우편함이 열리며 사라의 클로즈업으로 시작된다. 실시간으로 여러 인물들의 교차편집이 진행되다보니 씬과 씬 사이의 전환점을 관찰해보는 것도 재밌다. 보통의 영화에서 씬의 첫 시작은 공간을 보여주는 설정샷이나 넓은 앵글을 사용하지만 <레퀴엠>은 여러 인물들의 비슷하면서 다른 상황을 효과적으로 비교하기 위해서인지, 씬의 구분이 없는 것처럼 씬을 열고 닫는다.
이런 씬의 전환 방법은 비슷하면서도 한 번도 겹치지 않는 것 같다. 이렇게 빠르고 반복적인 움직임으로 시작되면 관객을 집중시키고, 씬의 시작부터 일정한 리듬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잡는 앙각, 넓은 노즈룸의 풀샷. 집에 홀로 있는 사라를 더욱 외롭고 초라해보이게 만든다.
동일한 인서트에서 음식이 사라지는 점프컷.
이전의 초콜릿을 먹는 샷과는 정반대의 연출이다. 초콜릿 하나하나 어루만지고 음미하는 것이 유일한 행복이었던 사라에게 다이어트 식단을 먹는 시간은 아무 의미도 감정도 느낄 수 없는 시간임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몽타주 컷.
하루 세번의 식사를 기다리는 시간이 사라에게 너무나 길게 느껴지는 것을 보여준다. 이후 동일하고 비슷한 상황이 다른 상황에서 한 번 더 보여지게 된다.
특히 사라의 경우엔 외로움을 느끼며 반복되는 삶을 느끼는 인물이기에, 이런 연출이 더 효과적이게 느껴진다.
음식이 들어있는 냉장고. 냉장고는 식욕을 상징하며, 이는 영화에게서 사라를 갈등하게 만드는 주요한 물체이기도 하다.
클로즈업 인서트 사이사이마다 인물 단독샷을 배치하는 몽타주는 대사나 큰 액팅 없이도 인물의 감정을 쉽게 유추할 수 있게 한다.
00:31:31
사라의 시선을 따라서 진행되는 분할 몽타주. 아래는 사라의 시점샷과 동일하다. 대사를 따라서 움직이는 화면으로 짧은 시간 내에 필요한 정보들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역할도 한다. 영화 전체적으로 편집을 활용하여 많은 정보를 꾹꾹 압축했다.
알록달록한 약… 불량식품 같기도 하고, 아무런 위험도 느껴지지 않는다. 사라 역시 '간단하네'라고 생각했다. 현재도 펜타닐이 스키틀즈라는 이름의 무지개색 알약으로 불리며 유통되는 것을 생각하면… 20년 전 영화이지만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다.
해리와 다른 인물들처럼 사라가 약을 반복적으로 복용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첫 몽타주. 기존엔 티비를 켜는 것이 반복적으로 나타났다면 이젠 이 몽타주도 함께 섞여서 등장하기 시작한다. 등장인물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반복적이고 중독될 수 밖에 없는 루틴.
빵을 꺼내와 먹을 때도 약과 동일한 분할 화면
냉장고는 식욕을 상징한다. 약을 복용하자 식욕을 더이상 두려워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며 식사를 한다. 이전과는 다르게 강조되는 느낌 없이 넓게 촬영되었다.
열지도 못하던 냉장고를 바라만 보고, 회피하던 사라가 이젠 냉장고를 열고 먹고 싶은 것도 먹으며 춤을 춘다. 이 샷 역시 점프컷으로 진행.
이후 약을 먹는 몽타주와 비슷한 느낌으로 커피를 내리는 몽타주가 등장한다. 식욕 억제제는 커피 100잔을 먹는 것과 비슷한 효과라고 생각하면 된다. 뇌의 신경을 자극하여 각성하게 만들고 이로 인해 식욕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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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을 따라서 살짝씩 흔들리는 것을 보면 트랙보단 스테디캠인 것 같다. 오프닝 시퀀스와 대비되게 이 씬에서는 두 인물이 드디어 정면으로 마주하고 솔직한 대화를 하는 장면이어서 좋았다.
그리고 아직 인물들이 약에 많이 중독되기 전이라 컷 하나하나의 길이가 긴 편. 특히나 이 샷은 해리가 일어나서 나가기 전까지 모자의 투샷이 롱테이크로 촬영된다. 역광으로 인물의 표정은 인식할 수 없다. 해리가 '또 온다'라는 말은 이 때문에 진심처럼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두 사람 다 원하는 것을 얻어가고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갈등과 이해는 해결하지 못했기에 홀로 남은 사라의 샷이 더욱 쓸쓸하고 공허하게 느껴진다.
00:49:24
확실히 이전 화면에 비해 실내 화면이 매우 어둡게 촬영되었다. 타이트샷은 넓은 화각으로 공간을 왜곡되어 보이게 하여 불안한 사라의 심정을 시각적으로 비춘다.
두번째 타이트샷, 이전과 동일한 것처럼 보이지만 화각이 살짝 더 넓어졌다. 중독 초기 증상이 드러나는 시점이며, 티비에 출연하는 자신의 모습이 환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왜곡된 화면은 불안감을 만든다.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기존의 화면보다 과하게 왜곡되어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냉장고는 사라의 시점샷으로 핸드헬드로 촬영. 맹수의 소리를 내는데, 이 소리가 어떻게 들으면 배고플 때 배에서 나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01:11:49
사라라는 인물이 바랐던 것, 가장 두려움을 느끼는 것을 보여주는 환각 씬. 엄청난 속도의 몽타주로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나눠진 컷들만 무려 약 180컷 정도이다.
냉장고는 식욕을 상징하고, 식욕은 사라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자 몸이 보내는 위기 신호이다. 더불어 '음식을 줘 사라!' 라고 외치는 사라 본인과 관객들.
이전에 정신 없고 반복되던 화려한 샷들과 대비되는 어둡고 긴 샷으로 마무리한다. 카메라가 텅 빈 방 안을 빙 둘러 보이고, 겨울을 알리는 브릿지가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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