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17. 00:14ㆍ샷바이샷
1:08:35 ~ 1:14:32
대폭발 직전의 폭풍전야가 담긴 샷.
모든 인물들의 감정이 잔뜩 응축되었다. 이후 등장할 장면들을 위해 상당히 절제된 느낌의 샷. 어머니와의 전화를 마친 마이클은 "더 이상 못참겠어."라고 말하지만 페넬로피의 단독샷 뒤에 있는 거울을 통해 뒷모습으로만 보여주는 것이 재미있다. 영화에서 꾸준히 등장하는 이 거울은 어쩌면 카메라보다 인물의 감정을 숨김 없이 드러내는 역할을 했다. 가령 통화하는 앨런을 초조하게 지켜보는 낸시의 모습도 이 거울을 통해 드러난 것처럼. 그러나 이제 인물들을 숨기지 않는다.거울이 아닌 카메라, 인물에게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낼 준비를 마쳤다. 그래서 더이상 거울에는 인물이 중요하게 담기지 않고 뒷모습만 남는다. 인물들이 본색을 드러내며 거울의 역할은 끝난 셈.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롭게 본 것은 풀샷의 인물 배치.
늘 같은 공간이 다르게 보일 정도로 다양하게 활용된다. 영화 초반에 풀샷이 샷을 절반으로 나누어 철저하게 부부들끼리 대립할 수 있도록 배치했다면, 후반으로 갈수록 인물 개개인이 전부 적대적으로 변하며, 배치가 뒤얽히게 시작한다!
이 씬에서도 역시 화면 밖에 있던 페넬로피가 화면 안으로 들어오며 상당히 기묘한 대치구도가 만들어진다. 핸드폰을 화병에 빠뜨리고 남편들을 잔뜩 약올리며 의기투합했던 낸시와 페넬로피의 대치구도가 준비되고, 이후에 활약할 앨런은 대기하라는 듯 홀로 우측에 있다.
폭발의 서막, "우리 양쪽 다 문제가 있어요." 라는 낸시의 말.
책임을 공동으로 만드려는 말에 마이클, 페넬로피 부부의 반응샷.
낸시와 페넬로피의 리버스샷이 이어지고
페넬로피의 폭발은 M.S로 빠진다. 거울에 낸시나 앨런이 아닌 마이클이 들어가있는 것도 웃기다. 마이클에게 던지는 것 같기도 하고, "내 집에서 나가!" 하는 말에 마이클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과거의 아군도 적이고, 이제 본인 말고는 아무도 믿을 수 없는 듯.
그렇게 가방이 천장에 부딪히는 순간 컷.
그리고 다음 컷은 위에서 떨어지는 가방에서부터 붙는다. 보통의 영화라면 떨어지는 물건들을 C.U으로 촬영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넓은 샷으로 훨씬 더 재미있는 샷이 되었다. 가만히 있는 인물들 위에서 소지품이 와르르 떨어지고 가장 멀리 있던 낸시가 앞으로 달려나오는게 최소한의 카메라 움직임으로 입체적인 장면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풀샷은 바닥도, 천장도 보이는 매우 와이드한 앵글.
이전 투샷이나 단독에서부터 이미 눈치챌 수 있지만,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광각렌즈로 촬영되었다. 뒷배경까지 보여주는 깊은 심도, 상황과 감정을 더 극적이게 만들어주는 넓은 앵글... 개인적으로 좁고 가득 찬 공간일수록 광각렌즈가 빛을 발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가 적절하게 보여준다. 뒤에 있는 인물, 과거에 등장했던 소품들이 배경에 고스란히 쌓여져 있는 것이 보이며 영화를 더욱 재미있게 만들어준다. 어떤 인물에, 어떤 곳에 시선을 두어도 흥미롭다.
이전 풀샷에서 앵글이 뒤집히지 않고 뒤에 있던 인물들의 쓰리샷으로 들어간다.
세 인물의 시선도 각자 다른 곳을 향해있다.
'한 방 먹였다' 라는 느낌이 제대로 보이는 부감샷.
페넬로피는 화면 중심부에 꽉 차있지만, 낸시는 페넬로피와 동일한 높이에서 내려찍어 작고 초라하게 보인다.
"가자고, 낸시"
말과 같이, 이 상황을 회피하려는 듯 화면 밖으로 벗어나려는 앨런.
낸시가 화면 밖으로 벗어나자, 이제 웬걸... 또다른 적이 등장한다.
목소리와 페넬로피의 시선을 따라 우측으로 패닝된 카메라가 또다른 투샷을 만들어낸다.
이 씬은 전체적으로 쉴 틈 없이 이어진다. 하나의 대립이 끝나면 또 다른 대립, 또 또다른 대립... 특히 페넬로피를 중심으로 대립의 중심 인물이 변할 때 샷의 움직임에도 주목하면 좋을 것 같다.
낸시가 화면 안으로 들어와 투샷이 완성되자, 방금 전까지 굉장히 애매하고 불안정해보였던 앨런의 단독샷이 굉장히 안정적인 샷이 된다. 동시에 앨런의 표정 역시 조금 풀린 것은 기분탓이 아닐 것.
이번엔 페넬로피와 마이클의 O.S 리버스샷이 이어진다.
페넬로피는 마이클의 시선에서 보여지듯, 천장까지 보이는 앙각으로 촬영되었다.
반면에 마이클은 아이레벨.
분명 위치상으로 우위에 있는 것은 페넬로피이지만, 마이클의 샷이 훨씬 더 안정적으로 느껴진다.
오히려 수세에 몰린 것은 페넬로피 같다고 느껴지는 아이러니한 대치샷.
페넬로피가 우측으로 빠지고,
다시 부부간의 싸움으로 시작된다.
대립구도가 바뀌는 사이마다 F.S이 들어가는데, 대충 어떤 식으로 대립이 시작될지 암시한다.
우측에 붙어있는 앨런&낸시, 좌측에 있는 마이클&그리고 화면 밖에 있지만 페넬로피. 또 다시 부부간의 대립 구도가 완성되었다.
"우리 애가 그쪽 애 패서 정말 후련해!"
광각렌즈의 왜곡된 화면은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최대로 역동적인 샷을 만들어낸다. 낸시는 제자리에서 말할 뿐이지만 작은 비틀거림과 손동작만으로도 잔뜩 술에 취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이에 힘을 더해주듯, 카메라 역시 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하며 이 시점부터 타이트샷에서 배우들이 손을 활용한 액팅을 정말 많이 한다.
낸시가 가리키는 것은 페넬로피이지만, 마이클의 리액션샷이 이어진다.
낸시가 앉고 다시 안정적인 투샷이 만들어진다.
여기서 페넬로피의 샷이 B.S로 가까이 들어가지만
받아치는 앨런은 페넬로피와 동일한 크기의 샷이 아닌, 처음과 같은 투샷으로 유지된다. 왜냐면 이미 페넬로피의 감정은 낸시와 남편 마이클과의 싸움으로 치솟은 상태이지만, 앨런은 공격을 받은 적도, 감정이 폭발한 적도 없기 때문. 애초에 정정당당한 싸움이 아닌 느낌이 든다. 앨런의 여유있고 차분한 모습이 샷을 통해서 드러난다.
이에 대비되는 페넬로피의 타이트샷은 앨런 부부의 투샷 덕분에 아슬아슬 불안한 느낌이다.
창문을 통해 뚫린 느낌이었던 리버스샷에 비해 페넬로피의 뒷 배경은 어느새 해가 져 어두워진 주방이 보이며 앨런 부부의 투샷보다 훨씬 답답한 느낌을 준다.
앨런 부부가 투샷으로 진행되는데 마이클과 페넬로피의 샷은 단독샷으로 진행된다.
해가 저물며 집 안의 명암이 강해지고 이렇게 인물의 표정, 주름, 핏대 하나하나가 뚜렷해보인다. 특히나 격한 감정과 움직임을 보여주는 페넬로피의 타이트샷에서 두드러지는데, 마치 다른 사람으로 보여질 정도로 인상이 바뀌는게 재밌다.
단독으로 진행되는 페넬로피&마이클 부부에 대비된 앨런 부부의 투샷은 행동 하나하나, 표정 하나하나로 페넬로피 부부를 심기를 건드는 느낌이다. 투샷을 유지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낸시의 행동을 의도적으로 노출시키기 위함이 가장 큰 이유 같다. 초반에 계속해서 삐걱거리던 부부가 후반부에 와서 제대로 합쳐졌다.
이에 비해 합쳐질 생각도 편 들어줄 생각도 안하는 바보같은 마이클의 단독샷이 중간중간 배치되어, 페넬로피의 단독샷을 더 초라하게 만들어버린다.
'제인 폰다'를 빗대어 페넬로피를 비꼬자, 페넬로피가 좀 더 앞으로 나오며 살짝 부감 같은 앵글이 나온다.
처음부터 끝까지 큰 변화가 없는 투샷에 비해 페넬로피의 단독샷은 핸드핼드로 마구 흔들리며, 광각렌즈의 왜곡된 화면으로 요동치는 감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당신 남편도 확 깼을걸요."
"내 얘기하지 말아요."
완전히 선을 긋는 마이클.
"우리애는 나약한 호모는 아니니까!"
"당신 애는 빌어먹을 고자질쟁이야!"
서로를 향하던 인신공격이 결국 자식들에게 향한다.
다시 F.S
페넬로피가 자리에 앉고 낸시가 일어나며 마무리엔 또 부부가 뒤얽힌 샷이 완성되었다.
이 씬의 첫 시작인 페넬로피가 가방을 던지기 직전의 폭풍전야와 비슷한 느낌. 튤립을 마구 던지는 낸시의 샷 역시 마찬가지로, 막상 뭔가가 부서지고 던져지는 샷은 항상 멀리서 찍는다. 폭력과 분노를 작고 우스꽝스럽게 보이게 만드는 의도일까.
모든 갈등의 원흉이었던, 왈터의 전화.
평화와 화해의 상징...이었던 튤립 한 송이에 절묘하게 가려진다.
다시 페이드인되며 공원의 햄스터 클로즈업이 등장.
공원 배경으로 두 부부의 자식으로 추정되는 두 아이의 모습이 보이면서 영화의 메세지를 보여주며 크레딧이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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