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9. 23:01ㆍ샷바이샷
2:03:06 - 2:05:31
CCTV를 통해 데지가 들어오는 것을 확인하는 에이미. CCTV 화면은 곧 에이미의 시선인데, 데지가 굉장히 작고 불품없는 존재처럼 보인다. TV속 화면은 마치 닉이 빠졌던 비디오 게임 같기도 하고. 에이미가 이야기를 만드는 작가인 것을 생각하면 굉장히 재미있는 씬의 시작이다. 데지가 에이미가 준비한 시나리오 속으로 들어오는 느낌.
좌우 대칭의 미장센은 보통의 영화에선 안정감을 주지만, 스릴러/공포 장르의 영화에선 오히려 불길함을 주는 장치 같다.
뒤에서도 나오겠지만, 데지가 나오는 정면샷들은 이런 대칭샷이 많이 활용되었다.
에이미가 위치를 옮겨 암흑으로 들어가자 긴장감이 생긴다.
영화가 전체적으로 어둡고 명도가 짙은 편이긴 하지만, 특히 이 씬에서는 인물(에이미)에게 조명을 거의 주지 않는다. 때문에 에이미의 표정을 확인하기 힘들다. 에이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닉이 했던 질문처럼 묻고 싶다.
밝은 현관쪽에서 어두운 거실로 들어서는 데지. 엔드 지점의 O.S 역시 마찬가지로 인물보다 백그라운드 라이트가 더 강하다. 이런 조명은 인물의 표정을 확인할 수가 없어서, 얼굴보단 대사, 대사보단 인물의 몸짓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든다.
지금부터 이 씬의 마지막까지 투샷을 좌/우로 나눠 에이미의 위치에 주목해봐도 재밌다.
영화든, 회화에서든 보통 샷을 좌/우로 나눈다면 좌측에 있는 인물이 리드하는 사람으로 보이게 된다. 사람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좌측에서 우측으로 이동하기 때문. 마찬가지로 샷을 상/하로 나눈다면 위쪽에 있는 사람이 더 강하고, 주도적인 사람으로 보이게 된다. 이는 영화 뿐만 아니라 연출이 들어가는 모든 예술에서 전반적으로 통하는 장치 같다. 이 긴 숏 뿐만 아니라 이 씬 전체로 봐도 에이미는 항상 프레임의 좌측, 또는 프레임의 위쪽에 위치해있다. 특히 이런 위치는 남성 인물이 선점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씬에서 에이미는 주도권을 쥐고 있었던 셈.
O.S에서 시작된 샷은 에이미가 데지 앞에 마주서며 아주 서서히 인물에게 다가간다. 조명 하나 비추지 않고, 표정 하나 보이지 않지만 두 사람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단추를 풀거나, 입을 맞추는 움직임 하나하나에 긴장하게 되고, 프레임 아웃.
침실은 거실보다 더 어둡고 답답하고 밀폐된 공간이다. 주광은 에이미의 뒤쪽에 위치시켜 역시 데지와 비교해 에이미의 표정이 더 드러나지 않게 하고, 이 인물을 미스터리하게 만든다.
데지가 등장하는 샷들에선 특히나 이런 좌우대칭의 정면샷들이 자주 활용된다.
양쪽에 위치한 이상한 문양의 액자들 덕분에 더 기묘한 느낌의 대칭샷.
가끔은 정면같이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보다 이렇게 일부를 보여주는 컷이 더 자극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전 거실의 공간에서 인물의 표정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서 긴장감을 자아냈다면, 침실의 공간에선 에이미의 시선을 통해 의문을 가지게 된다. 시선이 향하는 방향은 역시나 모두 왼쪽.
이전 컷과 재밌게 이어지는 정면 리버스샷.
에로영화에 흔히 나올 것 같은 뻔한 샷인데, 이상하게 무섭다. 먹잇감이 들어오길 기다리는 트랩...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샷.
우리는 이전 씬들의 빌드업(손목에 흉터를 남기고, 커터칼을 챙기는 등)들을 통해 이미 덴지를 해칠 준비를 마쳤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에이미가 프레임아웃을 할 때 자연히 긴장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비슷비슷한 샷의 배치인데 데지를 단독으로 두는 샷들이 훨씬 많은 것 같다.
위에 있는 인물은 아직 데지이지만, 에이미의 시선이 향한 좌측으로 두 인물이 쏠려있기에 데지가 리드하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다시금 에이미의 시선이 프레임 밖을 향한다. 시선은 동일하게 좌측.
인물샷 사이사이 배치되는 풀샷의 인물 배치도 의도적으로 에이미를 감춰서 데지를 혼자 남겨두는 느낌.
에이미는 데지에 의해 블로킹되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에이미를 계속해서 샷의 좌측에 위치해두었던 이유가 나온다.
에이미가 손에 칼을 넣고 절정으로 향하자, 데지의 샷이 단독으로 전환된다.
에이미의 시선이 정확하게 데지를 향하는 첫 순간은 확실하게 에이미의 표정을 보여주며 공포감을 극대화한다.
해치는 장면도 굉장히 짧고 간결하게.
여기서부터 컷 사이사이 블랙, 점프컷
닉과 에이미의 과거 주요장면인 계단씬과 동일한 기법이다. 에이미의 인생이 바뀌는 중요한 찰나.
에이미와 데지의 위치가 바뀜과 동시에 샷 역시 부감으로 전환된다.
이젠 풀샷에서 에이미에 의해 데지가 블로킹된다. 우위를 점하는 사람이 인물 배치와 컷의 전환으로 순식간에 뒤바뀌는 순간이다.
우위에 있는 에이미의 샷이 앙각, 죽어가는 데지의 샷이 부감으로 바뀐다. 그러나 이전의 샷들보다 훨씬 더 극부감. 특히 데지의 극부감샷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절망적이게 느껴진다. 씬의 시작부터 종종 등장했던 데지의 정면샷 역시 일그러진다. 회전/반전되어 마치 어딘가에 매달린 듯 하다. 이전에 나왔던 데지 단독의 대칭샷들이 모두 이 샷들을 위해 설계된 것 같다.
격한 몸싸움이 이어지지만 오히려 카메라는 픽스, 혹은 부드럽고 느리게 인물을 따라서 움직인다. 에이미의 망설임이나 동요가 느껴지지 않는 담백한 샷. 철저히 에이미의 기억 같은 샷. 그래서 만약 카메라가 핸드핼드로 격하게 움직였으면 오히려 보이지 않을 것들이 많이 보인다. 데지의 목에서 뿜어져나오는 피, 지혈을 막는 에이미의 손, 차분히 넘기는 머리짓, 와중에도 계속되는 허리짓. 하나하나에 집중할 수 있다.
이 짧고 다채로워보이는 점프컷들에는 사실 이전과 동일한 샷이 굉장히 많다. 그러나 인물의 배치 변경만으로 굉장히 다른 샷들처럼 보인다. 동일샷들은 과거 상황과 비교하게 함으로써 현재 상황을 훨씬 극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역할도 하는 듯. 침대, 혹은 에이미에 가려져 죽어가는 데지의 모습은 보여주지 않는다. 처음 봤을 때는 굉장히 자극적인 연출이라고 생각했지만, 자세히 볼수록 모든 과정을 최소한으로 담아낸 연출이라는 생각이 든다.
점프컷 종료.
죽은 데지의 모습. 좌우 명암이 매우 대비되며 훨씬 비참하고 처참하게 보인다.
잠깐 얼굴을 찌푸렸다가 냉혈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에이미.
여기까지의 샷들은 전부 움직임 없는 픽스샷의 배치. 살인의 순간 치고는 무섭도록 고요하다. 오히려 모든게 끝나서 안심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똑같이 피칠갑된 모습이지만, 데지의 죽음으로 에이미는 오히려 다시 태어난 사람 같다.
닉: 우리가 지금껏 했던 거라고는 서로에게 분노하고, 서로를 조종하려 하고, 서로에게 상처줬던 게 전부잖아.
에이미: 그게 결혼이야(That's Marri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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