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탄 소년 (2011)

2023. 4. 16. 21:08샷바이샷

 

 예전부터 생각하길, 핸드헬드 카메라의 움직임은 인간이 숨을 쉬는 움직임과 많이 비슷하다. 프레임 양 끝을 자세히 보면 느껴지는 떨림은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이질적인 움직임이지만, 어느샌가 그런 떨림에 대한 의식은 그 떨리는 프레임 속 인물에게로 향하게 된다. 사건과 캐릭터들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보는 영화 속 제 3의 인물의 시선과 많이 닮아있는 그런 촬영법이다.

 

 그만큼 어떠한 상황에서 인물의 감정을 꾸밈없이 느낄 수 있고 이는 보는 사람을 몰입하게 만드는 핸드헬드. 다르덴 형제는 이런 핸드헬드 연출의 대가라고도 불린다. 1999년 <로제타>부터 시작해서 그들의 흔들리는 카메라는 늘 위태롭게 사회 속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낮은 곳에 위치한 인물들을 가장 가까이서 포착한다.

 

 


  어딜 가나 눈에 띄는 붉은색 옷. 영화 내내 카메라는 이 붉은색 옷을 입은 아이를 비춘다. 부모에게 버려져 보육원에 맡겨진 아이, 보육원에서 시도때도 없이 도망치고 질나쁜 청소년과 어울리는 문제아. 롱샷에서도, 어두운 밤에도 버스 정류장에서 수많은 인파 사이에 있어도 이 시릴이라는 소년은 금새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눈에 띈다. 어쩌면 이 붉은색은 사회에서 시릴에게 찍은 하나의 낙인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붉은색 옷은 그런 운명에 저항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시릴의 의지를 나타내는 것처럼 느껴진다.

 


CUT1

시릴을 따라가던 카메라가 넘어짐과 동시에 아래로 크게 흔들리며 틸트 다운, 다시 일어나는 시릴을 따라 틸트 업
또 다시 밀쳐지는 시릴을 아래로 팔로잉, 모든 움직임이 시릴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자전거를 타던 시릴을 평화롭게 팔로잉하던 카메라는 아들의 프레임 인으로 인해 순식간에 아래로 곤두박질 친다. N.S 정도의 넓은 샷이고 많이 상황에 비해 격하게 움직이진 않지만 끊임없이 넘어지는 시릴을 따라 위 아래로 움직이는 동선은 카메라가 격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착각이 들게 할 정도로 긴박하게 느껴진다. 상대적으로 키와 체격이 작은 시릴이 열세의 위치에 있는 것이 투샷에서도 보이는데 자꾸만 아래로 넘어져 훨씬 더 화면 하단에 위치하게 된다. 또한 붉은 옷을 입은 시릴과 보색인 푸른색 옷을 입은 아들은 이런 두 사람의 대치 상황을 시각적으로도 보여주는 장치이다.

 

일어나 도망치는 시릴을 따라가지 않고 L.S으로 컷 마무리

시릴을 위주로 따라가는 카메라는 시릴이 아들의 발을 잡아 넘어뜨림과 동시에 우패닝해서 잠시 아들을 잡았다가 일어서서 도망치는 시릴을 다시 따라간다. 시릴은 투샷과 불리한 위치의 앵글을 아주 잠깐 벗어나지만 놓칠 수 없다는 듯 도망치는 시릴의 뒷모습 프레임 안으로 아들이 프레임 인 해서 쫓아간다. 이때 카메라는 도망치는 시릴, 추격하는 아들 그 어느도 팔로잉하지 않고 넘어진 자리에 서서 그들을 보내주며 영화 속에 반복되었던 컷의 종료 패턴을 다시 사용한다.

 

 


CUT2

도망쳐 숲으로 들어오는 시릴이 카메라를 평행하게 스쳐지나가고 우패닝하자 다시 아들이 프레임 인 하여 추격한다

 어쩌면 이 장소는 이 일이 아니었다면 시릴이 돌아올 일 없었을 것이다. 멀리서 시릴이 카메라 쪽을 향해 달려오는 듯 보이지만 이를 스쳐지나가 다시 멀리 달아난다. 시릴이 잠깐 가까워졌다가 멀어지는 순간 놓칠 수 없다는 듯 아들이 프레임 인 한다. 단독샷과 투샷을 반복하는 화면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두 사람의 거리를 체감하게 하고 결말에 대한 궁금증을 고조시킨다.

 

 


CUT3

시릴이 나무 위로 도망치는 모습을 거칠게 흔들며 팔로잉하다가
곧 이어 도착한 아들의 모습을 퀵패닝으로 전환

  빠르게 카메라 앞을 지나간 시릴이 카메라도 따돌릴 기세로 트레일러, 나무를 타고 올라가기 시작한다. 그의 행동을 예상하지 못한 것인지 의도적인 것인지 시릴을 잡은 화면은 격하게 흔들리며 시릴을 간신히 팔로잉하는데 머리가 잘리거나 신체 일부분이 화면 밖을 벗어나기도 한다. 카메라는 이 샷 내내 같은 자리에 있으며 잡을 수 있는 인물을 상황에 따라 바꾼다. 곧이어 우측 하단에서 발소리가 들리자 소리의 근원인 방향으로 카메라가 빠르게 대각선 패닝한다. 그러나 그가 놓쳤음을 알려주는 듯 시릴은 이미 화면 밖을 벗어난지 오래이다. 내려오라는 시릴은 내려오지 않고 아들이 트레일러를 내려와 아래로 향하는 모습을 따라가고 이내 다시 바닥의 돌을 주워 힘껏 던진다.

 

 


CUT4

아들 P.O.V 나무 위 시릴의 모습을 앙각으로

 아들의 시점샷처럼 보이는 시릴의 단독샷. 완전히 따돌렸음에도 날아오는 돌을 피하려는 듯 시릴은 마치 카메라까지 따돌릴 기세로 계속해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CUT5

다시 바닥의 돌을 줍는 아들의 모습을 팔로잉하며 컷 전환 힘껏 던지는 모습도 디테일하게 팔로잉

 아들의 분노를 내포하고 있는 듯한 거친 움직임이다. 핸드헬드가 감정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이런 컷일수록 눈에 띈다. 돌을 찾아 바닥을 더듬거릴 때 잠깐 휘청이는 움직임, 그리고 돌을 힘껏 던질 때 인물을 따라 빠르게 팔로잉하는 움직임은 짧은 샷임에도 큰 속도감과 힘을 더한다. 실제로 얼마 움직이지 않았음에도 카메라에 가까워질 수 있게 설계된 인물의 동선과 움직임은 그의 움직임을 더 커보이게 만든다.

 

 


CUT6

아들의 시점 P.O.V 

 반대로 나무에서 떨어지는 시릴의 모습은 아까와 동일한 앵글로 멀리서 촬영되었다. 그 움직임을 동일하게 팔로잉하지만 때문에 오히려 조용하고 천천히 떨어지는 듯한 느낌도 받을 수 있다. 첫 컷과 동일하게 아들로 인해서 다시 화면의 하단으로 추락 당하는 시릴. 트레일러에 가려 갑작스럽게 프레임 아웃하고 꽤 오랫동안 잡고 있는 빈 화면의 섬세한 흔들림은 긴박한 감정에서 두렵고 걱정스러운 감정으로 빠르게 변화한다.

 

 


CUT7

아들의 M.S 카메라를 지나갔다가 멀어지는 형태로 가만히 패닝만 한다

 이전의 <로제타>였다면 시릴이 떨어진 곳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팔로잉하여 어쩌면 다음 컷까지 이어지지 않았을까. 그러나 첫컷과 마찬가지로 이곳 역시 아들을 팔로잉하거나 따라가는 것이 아닌 트레일러 뒤로 걸어가는 모습을 어느 선에서 멈춰서서 방관하는 형태의 샷을 선택한다. 이 역시 인물이 빠져나간 화면을 오랫동안 보여주는데, 어떤 움직임 없이 빈 화면일수록 카메라 본연의 떨림이 더 잘 보인다.

 

 


CUT8

아들 N.S에서 숙이는 동시에 틸트 다운
쓰러진 시릴을 방치하고 아들을 따라가는 카메라

 이전의 긴 빈 공간 샷은 아들이 걸어가는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도 했다. 이전까지 시릴을 주축으로 움직였던 카메라는 시릴이 의식을 잃자 그 다음 인물인 아들을 중심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처음에 시릴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다가 아들이 주저 앉자 그를 따라 아래로 틸트 다운한다. 그리고 쓰러진 시릴을 방치하고 겁을 먹고 화면 밖을 나가는 아들을 따라간다. 역시 숲으로 나가는 모습을 숲 안에서 보내주듯 찍었다. 

 

 


CUT9

아들 O.S 점장 B.S 차 안에서 나오는 것을 아들을 방치하고 팔로잉

 인물이 프레임 아웃한 전경에서 바로 점장의 타이트한 얼굴샷으로 받는다. 아들과 차량 프레임에 갇혀 한정된 샷이 인물의 불안하고 답답한 감정을 빠르게 파악시킬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이를 빠르게 빠져나오는 것을 팔로잉.

 

두 사람을 팔로잉하다 어느새 멈춰서서 숲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우패닝해서 보여준다.

중심인물이 이전까지 아들이었다가, 점장이 등장하고 점장으로 잠시 바뀌었다. 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아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따라간다. 그러나 카메라가 점장의 동선을 따라 패닝하여 샷이 넓어지자 중심인물이 두 사람이 된다. 계속해서 인물을 보내고 다음 컷으로 향하는 것을 선택한다. 단순히 하나의 샷의 마무리로서 가장 쉬운 방법을 선택한 것인지. 불필요한 시간과 동선의 스킵을 위해서일지.

 

 


CUT10

N.S에서 시작한 인물이 준비된 프레임 안에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듯 대화 M.S 투샷이 완성된다
역시 카메라는 제자리에 있되 쓰러진 시릴을 발견한 것 같은 점장의 모습을 수풀 사이 후면 L.S을 통해 비춘다

 핸드헬드의 가장 큰 장점은 피사체를 따라 움직일 수 있는 범위가 매우 유동적이고 자유롭다는 점이다. 물론 이 영화에서 그 장점을 잘 사용한 경우도 있지만 적어도 이 씬에서는 그런 방법이 잘 사용되지 않았다. 카메라는 첫컷부터 동일한 자리에 서있고 그 자리에서만 인물의 움직임을 상하좌우로 따라간다. 이런 방법은 자칫하면 장점을 잃어버린 지루한 샷이 될지 모르는데, 이 때문에 인물의 동선을 카메라를 중심으로 아주 잘 구성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카메라에서 멀어졌다가 가까워져서 대화하다가 다시 필요한 인물만 팔로잉했다가 멀어지는 구성. 이 구성은 컷의 사이즈가 다양화됨으로서 컷이 나누어진 것 같은 효과도 받을 수 있다.

 

 


CUT11

점장 정측 B.S에서 점장이 허리를 살짝 숙임과 동시에 미동없는 시릴의 모습을 틸다운 단독으로 보여준다.

 아까 아들과 마찬가지로 의식 없는 시릴의 모습을 아직 살아 돌아다니는 인물의 움직임보다 우선순위 아래로 두었다. 때문에 어떠한 인물의 움직임 없이는 시릴을 비추지 않는다. 점장이 시릴을 향해 고개를 숙이자 이 움직임을 받는 듯 아래로 틸트 다운 한다. 이 또한 점장과 같이 잡는 O.S 같은 것이 아닌 단독샷으로 잡혀 시릴의 모습이 방치된 것처럼 보여진다. 여전히 미동이 없자 다시 점장을 향해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카메라. 

 

다시 카메라가 점장에게 향한다. 시릴을 손을 뻗자 똑같이 그 손의 움직임을 따라 팔로잉, 그러나 시릴이 아닌 시릴이 맞은 돌을 향한 것이었다.

 그리고 컷이 갑작스레 좁아졌다. 이것은 불안감과 두려움에 좁아진 시야를 보여주는 듯 답답한 느낌이다. 다시 시릴을 향해 손을 뻗는다. 이번엔 가까이서 살펴보려는 듯 보였다. 그러나 점장의 손과 카메라는 시릴을 지나쳐 옆에 떨어져있던 돌을 잡는다. 다시 돌아올 때도 시릴에게 어떠한 눈길도 주지 않는 듯 곧바로 점장을 향해 돌아온다. 시릴의 의식이 없을 때 완전히 중심 인물이 바뀌어버린 모습. 

 

갑작스레 울리는 전화기이지만 소리의 근원을 향하지 않고 끝내 돌을 던지는 점장의 모습

 돌을 주워 던지려는 순간 시릴의 방향에서 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잠깐 고개를 돌려 소리의 근원을 바라보지만, 카메라는 움직이지 않는다. 끝내 시릴의 모습이나 전화기의 샷 없이 점장만 비추는 카메라는 프레임 속 점장의 결단과 냉혹한 모습을 나타내는 것 같이 냉정하다.

 

아들 F.I 점장과 아들 투샷

 곧이어 이 좁은 프레임에 핸드폰을 가지고 온 아들까지 프레임 인 하여 투샷이 완성된다. 구급차를 부르려 수화기를 누르려는 순간 부스럭거리는 내재적 사운드가 들려오고 그 방향으로 두 사람의 시선이 옮겨진다.

 

일어나는 시릴의 모습을 천천히 팔로잉한다. 마치 소년을 기다려주듯이.

 두 사람의 시선이 아래로 향하는 것을 동기로 드디어 의식을 찾은 시릴에게 카메라 주도권이 넘어가는 순간이다. 이후 밖에서 두 사람이 시릴의 상태를 묻고 있음에도 카메라는 더 이상 두 사람을 향해 움직이지 않고 천천히 몸을 추스리는 시릴의 모습만을 기다려준다.

 

시릴이 정신이 들자 다시 두 사람을 지나치듯이 무시하고 시릴을 따라가는 카메라

 시릴이 깨어난 후에는 잠깐 스치듯이 지나가며 혹여나 다른 사람에게 말할까봐 불안해하는 두 사람의 표정을 잠깐 보여주는 것 외에는 제대로 부자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다시 카메라 동선의 근원은 시릴이 되었다. 단순히 인물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 이따금씩 놓아줘서 멀리서 지켜보는 롱샷은 이 긴박하고 두려웠던 순간이 종료되었음을 알리는 듯 숲 밖으로 스스로 걸어나가는 시릴을 보내준다.

 

 <로제타>에서 로제타의 뒷모습을 끈질기게 따라가기만 하며 오히려 전쟁 같은 삶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로제타의 사투를 극대화했다면, <자전거 탄 소년>에서 카메라는 시릴을 따라가길 선택하는 순간과 놓아주는 순간이 극명하다. 시릴이 아닌 다른 사람(특히 사만다)의 고통을 보여준다거나. 오히려 인물을 멀리서 관찰함으로써 물가에 놓은 아이처럼 불안하게 지켜보게 만든다거나. 

 

 


CUT12

N.S 정도에서 정지된 카마를 향해 다가오자 B.S
그리고 자전거를 향하자 360도 회전하며 팔로잉 

 카메라는 시릴을 반겨주듯 제자리에 서있다. 어떤 핸드헬드는 인물을 짖궃을 정도로 쫓아가며 괴로움과 아픔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한다. 이 영화에서도 그런 순간이 있다. 가령 첫 장면에서 수화기를 들고 아버지가 떠났음을 믿지 못하는 시릴의 모습이라던가. 

 

자전거를 타고 자신을 기다릴 사만다에게 향하는 시릴의 뒷모습 L.S

 그러나 어느순간 카메라는 시릴을 보여주는 역할을 할 뿐, 더이상 쫓아가지 않는다. 이 영화의 마지막 샷처럼 말이다. 이는 시릴이 이별을 받아들이고, 이제는 자신을 진정으로 위하고 사랑해주는 사람을 향해 갈 수 있는 아이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담담하게 페달을 밟고 사만다에게 달려나가는 시릴의 마지막 뒷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느 감독들은 고집하는 그들만의 스타일이 있다. 이는 잘 사용되면 그들을 상징하는 하나의 이미지가 된다. 그러나 자칫하다가는 틀에 박히거나 늘 비슷하거나 똑같은 작품만 생산해내는 평범한 제작자가 될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로제타>이후로 거의 10년이 넘어서 나온 이 영화는 다르덴 형제의 성장 역시 엿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훨씬 더 친절하고 적재적소에 사용되는 다양한 구도의 컷들, 단순히 주인공만 따라가는 것이 아닌 어떠한 인물의 움직임을 따라가야 효과적일지 고민한 샷들은 이 영화의 디테일과 감정을 살렸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를 첫시도하려는 누군가가 나에게 추천을 바란다면, 나는 이 친절하고 따뜻한 영화를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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