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 (2007)

2023. 4. 10. 15:35샷바이샷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 영화를 보기 전에는 이 제목이 엉뚱하게 받아들여지긴 했다. 그러나 결말까지 보고 나니 이보다 적절한 제목은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한 사건을 맞닥뜨린 각 인물들의 시간을 뒤죽박죽으로 얽혀 구성한 영화는 적절하게 배치된 순서와 샷의 구도를 통해 얼마나 치밀하고 적절하게 계획된 하나의 이야기인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영화 곳곳에 끊임없이 배치된 신파적인 음악은 오히려 낯선 느낌을 만든다. 영화 내내 이 형제의 선택에 납득하거나 공감한 관객은 없을 것이다. 인물에게 일말의 동정심도 주지 못하지만, 이기적이고 납득 불가능한 선택들의 순간 깔리는 서글픈 멜로디는 오히려 분노하게 만드는 촉진제 역할을 한다. 

 

 


 공간을 천천히 드러내는 긴 샷으로 주로 구성된 이 씬은 관객을 이끌어가는 속임수로 가득하다. 씬 전체적으로 밖은 낮임에도 실내는 최소한의 조명으로 어둡게 만들어낸 것을 인물의 밝기를 통해 알 수 있고, 상당히 비밀스럽고 껄끄러운 공간임을 느끼게 한다.

 

낯선 현관문을 비추는 L.S

 어두운 실내, 가운만 입은 인물의 후면이 우측에서 프레임 인 한다. 안그래도 좁은 복도이지만 프레임 속 벽, 화장실 문, 액자, 거울, 서랍 등과 같이 세로선을 겹겹이 배치하여 더 좁고 답답한 공간으로 만들었다. 여태 등장한 적 없던 인물은 문으로 바로 향하지 않고 우측 서랍 앞에 멈춰서서 생각치 못하게 권총을 꺼내드는데, 문 앞의 앤디를 확인하기 전까지 허리 뒤로 총을 숨기고 있는 모습이 카메라쪽, 즉 관객을 향해서만 드러나기 때문에 정적과 더불어 숨막히는 긴장감을 준다. 적어도 그가 권총을 다시 서랍 안으로 집어넣기 전까지는 이 터질듯한 긴장감이 유지되다가 한명이 프레임 아웃하고 나서야 풀린다. 사실 우리는 이 씬의 주인공이 앤디임을 알고 있지만, 앤디를 배제하고 처음 보는 낯선 공간과 인물에서부터 시작되는 씬의 첫 컷은 틀림없이 의도적인 긴장감을 주는 장치이다.

 

 문을 열자 복도에 서있는 앤디의 모습이 나타난다. 복도의 조명은 실내와 구분될 정도로 진한 붉은색이며, 앤디 머리 뒤로 후광처럼 위치한 밝은 그의 등장을 강조한다. 거울에 딱 달라붙어 2개로 보이는 우측의 조명은 여성의 가슴, 남성의 성기 같은 묘한 성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는 어둑한 실내 조명과 더불어 성별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는 가운을 입은 인물을 통해 이 공간이 매춘을 하는 곳이라는 의심이 들게 만든다.

 

 

로닌으로 앤디를 팔로잉

 낯선 인물이 움직일 때는 미동 없이 멈춰있던 카메라는 주인공 앤디가 등장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부드럽게 그를 팔로잉해 따라가며 이어진다. 움직이는 카메라 특유의 숨쉬거나 걷는 것처럼 흔들리는 부분이 없이 매우 기계적이고 형식적인 움직임. 꺾인 벽을 따라 90도 패닝하자 또다른 붉은 공간이 보여진다. 창밖의 햇빛에 비해 조명 없는 실내로 인해 실내는 매우 어둡고 인물의 모습도 형체만 알아볼 정도로 약간 실루엣이 된다. 요리를 하는 낯선 인물과 옷을 한겹 벗는 앤디의 움직임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거의 트랙에 가까운 듯한 롱테이크 팔로잉

 앤디가 그 다음 새로운 공간에 드러설 때도 컷 없이 이 긴장감을 이어간다. 꽤 긴 붉은 벽을 블로킹해서 지나가자 이전보다 훨씬 더 탁 트이고 통창으로 인해 비교적 밝아진 공간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 공간도 여기가 끝이 아니다. 거의 방 전체를 훑으며 360도 회전에 가까운 팔로잉을 지속한다. 특히나 주목되는 부분은 앤디가 움직임을 멈추는 지점들, 별 이유없이 멈추는 것처럼 보이지만 컷 하나하나 살펴보면 공간의 새로운 정보값을 제공하는 부분에서 계획대로 앤디는 걸음을 멈춘다.

 

 첫번째, 벽을 지나 새로운 공간에 들어선 후 앤디가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은 공간을 가리지 않는 선에서 하지만 공간이 가장 잘 보이는 우측 찬장 앞에 위치해 술을 따르는 것이다. 이곳이 어떤 공간일까 궁금증을 가지게 될 정도로 럭셔리한 인테리어와 값비싸보이는 술과 조명, 미술품들이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귀를 귀울이면, 화면 밖에서 어떤 음악이 들려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뒤따라서 앤디가 좌측으로 이동하자 TV가 달린 또 새로운 정보가 등장하고, 우리는 이 소리가 어떤 전축이나 레코드판에서 흘러나오는 교양있는 음악이 아닌 어느 아동용 애니메이션에서 나오는 사운드의 일부인 것을 알아챌 수 있는게 재밌는 지점이다. 애니메이션에서 총기를 가지고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는 모습 또한 앤디가 곧 겪을 비극적인 일들과 매칭되는데, 마침 앤디가 도시 풍경을 보며 멈춰선 지점에서 이런 내용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또 앤디가 술잔을 들고 좌측으로 이동한다. 그 다음으로 보여지는 것은 순식간에 어둑해진 조명과 붉은 색채의 벽과 테이블 사이에 있는 수많은 전화기, 팩스기계 등이다. 이를 통해 이곳이 평범한 가정집은 아니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이곳에서 우리가 공간을 읽을 동안 앤디는 느리게 풍경을 보고, 입고 있던 셔츠까지 벗어버린다. 그리고 쭉 같은 동선이었던 좌측으로 이동하자 이 공간의 첫 시작과 같이 붉은 벽을 길게 블로킹하곤 복도 끝의 다른 방으로 향하는 앤디의 뒷모습을 더이상 팔로잉 하지 않고 멈춰서서 보내주며 길었던 한 컷의 마무리를 알린다.

 

 

 그 다음에 들어선 방은 이제껏 봤던 공간과 같은 공간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차가운 블루톤이다. 차가운 톤과 더불어 이상할 만큼 깨끗하고 잘 정돈된 방은 오히려 기묘하고 공포스러운 느낌을 주기도 한다. 탈의하고 우측에 살짝 걸린 침대로 향하는 앤디, 그리고 뒤이어 기다렸다는 듯이 들어오는 낯선 인물을 통해 다시 한 번 이 곳이 매춘을 하는 공간임을 확신을 더 들도록 한다. 적어도 다음 컷 전까지는 말이다. 그리고 낯선 인물이 등장한 순간 동시에 침대에 앉는 앤디를 패닝으로 팔로잉하여 보이지 않았던 침대쪽 공간을 오픈한다. 이번엔 전 컷과 다르게 지극히 절제된 움직임이다. 앉은 앤디 앞의 거울에서는 딱 앤디의 머리만 절묘하게 반사하여 의미심장한 그의 표정을 잠깐 보여준다.

 

 

금고 INSERT

 그 동안 화면 밖의 모습은 이제 좁은 인서트로 보여준다. 앤디에게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돈을 금고에 넣는 낯선 인물의 모습, 그리고 뒤이어서 인물에 거의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던 아랫칸의 주사기와 가루들을 통해 그제서야 이 곳이 어떤 행위를 하는 장소인지 모두가 눈치챘을 것이다. 

 

마약 INSERT

 이제 이 공간에 대한 거의 모든 정보가 밝혀졌다. 이젠 어떤 지체 없이 정확한 정보만 보여주는 타이트한 인서트샷들이 주로 나열되기 시작한다. 주사기, 팔을 묶는 고무끈, 그리고 마약가루. 한낮임에도 푸른 로우톤으로 인해 이 공간이 철저히 분리된 공간처럼 느끼게 한다. 꽤 눌러찍은건지, 혹은 샷이 많이 어둡고 타이트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타 컷들에 비해 지글거리는 노이즈가 훨씬 더 심해보이는데, 이 또한 이 공간의 이질적임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일지도 모르겠다. 마침 약을 열으로 녹이는 해당 장면과 잘 어우러지기도 한다.

 

앤디 INSERT

인물샷처럼 보이는 이 샷도 사실 거의 정보만 주는 인서트와 다름 없는 샷이다. 전 인서트와 이어지듯 준비된 마약을 투여하는 모습. 씬 전체적으로 어떻게 될지 예측 불가하던 느낌이 인서트 샷들로 인해 예상대로 진행되기 시작한다. 이 컷의 또다른 특징은 앤디의 상체를 카메라 가까이 위치시키고 하체를 카메라에 멀리 위치시켜 마치 부감처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더불어 카메라 밖에서 강하게 비추는 빛이 반대편에 있는 인물의 얼굴에는 거의 묻지 않아 명도차이가 심하고, 극적인 느낌을 준다. 주사기에 피가 들어가는 순간 웅장한 외재적 사운드가 서서히 커지는데 마약에 취해가는 것을 특별한 효과 없이 담백하게 연출해냈다.

 

서서히 붐 다운 그리고 서서히 인물을 향해 달리 인

 약에 취한 앤디가 현재 마주한 아내와의 문제를 솔직하게 털어넣는 장면, 이전 롱테이크에서 나왔던 장소를 그대로 사용하지만 구도가 전혀 틀려 다른 공간처럼 보이기도 한다. 처음엔 부감을 사용해 화면 정중앙에 위치한 앤디 머리 꼭대기에 남자가 올라가 있는 것 같은 독특한 구도에서 시작했다가 서서히 붐다운하여 아이레벨로 바뀐다. 그리고 정면이었던 구도가 카메라가 인물을 향해 다가갈수록 살짝 좌측으로 틀어서 아이레벨일 때 가려져있던 남자의 공간을 다시 여는 형태로 변화한다.

 

 뒤쪽에 위치한 공간조명을 제외하면 역시 밖에서 나오는 조명을 활용하여 인물의 반쪽만 강한 콘트라스트를 주었는데, 카메라가 살짝 앤디의 좌측 얼굴쪽으로 트는 것이 인물의 어두운 내면과 대사와 맞물려 극적인 느낌을 선사한다. 

 

 


 공간을 활용한 샷들 

 뒤죽박죽인 플롯, 한 사건을 통해 벌어지는 각 인물들의 상황을 반복하면서 보여주는 쉽지 않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 영화이다. 따라서 같은 상황이라도 인물에 따라서 공간과 구도를 멋지게 이용해냈다는 생각이 든다. 철저히 그 시퀀스의 주인공인 인물을 중점적으로 보여주는 다인 구도들이다. 

 


 추가로 기억에 남았던 씬

 

지나가 떠나고, 자신의 아내가 남동생 행크와 불륜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앤디의 감정을 차가울 정도로 정적으로 연출한 씬이다. 

 

 인서트를 제외하고 이 씬의 샷들은 전부 카메라가 높고 먼 위치에서 마치 인물을 관철하는 듯한 구도로 촬영되었다. 이런 구도가 마치 수세에 몰린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한없이 외롭고 작고 고통스러워 보인다. 보통 무엇인가 망가뜨리고 부수는 것들은 가까이에서 시끄럽게 연출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반대로 앤디의 모습은 매우 조용하게 연출되었다. 화장품이나 소품들이 바닥으로 떨어졌음에도 어떤 깨지거나 떨어지는 큰 소리조차도 들리지 않는다. 심리적, 육체적으로 이미 한계에 몰렸으나 어디에 말할 수 없는 그의 현 상태를 훨씬 더 비참하게 표현한다.

 

 마찬가지로 특히 거실의 이 돌들을 천천히 유리탁자로 떨어질 때 클로즈업 된 화면에서 잘게 부서지는 돌의 표면이 보여진다. 큰 움직임은 없지만 좁은 클로즈업 속에서 마구 부딪히고 무너져내리는 것이 마치 앤디의 내면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너무나 고요해서 그 속에 곧 튀어나올 듯한 폭력성이나 분노가 더 무섭게 느껴진다.

 

 각 인물들의 상황이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최악으로 치닫고 있음에도, 오히려 영화 초반부에 비해서 후반부의 연출이나 액팅은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꾹 눌러 참고 있는 듯 하다. 마치 자신의 가장 큰 실수만은 어떻게든 들키지 않으려 숨기는 인물들처럼, 화면이나 구도가 정적인 느낌이 든다. 그러나 그런 정적인 구도 속에서 모든 일을 이미 알고 있는 우리가 보기에 인물의 사사로운 액팅이나 비정상적인 행동이 더 크게 느껴진다. 살기 위해서 발버둥 치는 감정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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